채식과 육식, 그 환상의 랑데부
[ 테마기사 ] : 채식과 육식, 그 환상의 랑데부
한때는 그랬다. 고기 한번 실컷 먹고 죽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그 소원이 얼마나 절실했는지는 50년 전쯤 모씨(某氏)가 "나를 따르라"며 내세운 공약이 '이밥에 고깃국'이었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게 고기에 한이 맺혔던 사람들이 형편이 나아지면서 어찌 되었을지는 안 봐도 눈에 선하다. "고기 좋아, 좋아. 시래기? 콩나물? 돈 없는 사람들이나 많이 먹으라 그래!"라고 부르짖으며 육식우월론을 신봉하기 시작한 것.
하지만 상황은 겨우 몇 십 년만에 다시 역전되었다. 신나게 고기를 구워대던 사람들의 귓속에 지나친 육식 위주의 식습관이 성인병을 일으킨다는 소문이 들어간 것. 그후로 어찌되었는지는 지금 당신이 목도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다. 중·노년층이 중심이 되어 '저 푸른 초원'의 축소판이라 할 만한 복고풍 밥상에 생명연장의 꿈을 기원하게 된 것이 바로 그것인데….그들은 과연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일까? 만일 그들의 선택이 틀렸다면 또 다시 궤도수정, "저 붉은 조명 속으로 돌격, 정육점을 향해 돌격!"을 외쳐야 하는 것일까?
글·권영민 기자 kwon@mediland.co.kr
양자택일이 아니다
그들은 묻는다. "고기를 많이 먹는 게 좋을까요? 채소나 과일을 많이 먹는 게 좋을까요?" 대답은 늘 한결 같다. "가리지 말고 골고루 드세요."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또 다시 묻는다. "골고루 먹으라는 게 뭐죠? 고기를 일주일에 한 번만 먹을까요, 두 번 먹을까요? 과일은 매일 먹을까요, 이틀에 한 번 먹을까요? 채소는? 생선은? 도대체 어떻게 먹으라는 거죠?"
채식, 육식. 무엇이 다른까? 맨 먼저 채식과 육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영양분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자.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단백질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이다. 육류, 해산물, 계란 등에서 섭취할 수 있는 것은 동물성 단백질이요, 곡류, 콩, 채소, 과일 등에서 섭취할 수 있는 것은 식물성 단백질인 것. 동물성 단백질이 식물성 단백질에 비해 양질이고 흡수율이 높으며, 식물성 단백질만으로는 영양결핍 상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다수 영양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단백질이란 체내 기관과 조직을 구성하는 중요한 물질이다. 세포막의 구성성분으로 이용되고, 근육 피부 머리카락 등의 조직을 형성한다. 단백질은 20여종의 아미노산이라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아미노산은 음식을 통해서 섭취해야 하는 필수 아미노산과 체내에서 합성되는 비필수 아미노산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식물성 단백질은 필수 아미노산의 균형이 동물성 단백질만큼 좋지 않을 뿐더러 흡수율, 즉 신체에서 이용되는 비율이 낮다는 문제점 또한 지니고 있다.
하지만 식물성 식품만 먹더라도 제대로 섞어먹으면 필수 아미노산 부족으로 인한 부작용은 웬만큼 피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곡류에는 필수 아미노산 중 '라이신'과 '이소루신'이 부족한 반면, 콩류에는 풍부하게 들어 있다. 반대로 콩류는 '트립토판'과 '메티오닌'이 부족하지만 곡류에는 풍부하다. 따라서 서로 다른 필수 아미노산 조성을 가진 곡류를 골고루 섞어 먹는다면 완전채식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단백질 결핍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단 육식과 채식을 겸할 때보다 훨씬 더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단백질 이외에 철분 같은 무기질 역시 동물성 식품에 들어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채식이 장(臟)을 수호한다 반면 식물성 식품을 많이 먹어야 충분히 섭취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섬유질이라는 것이 바로 식물성 식품이 남들에게 보란 듯이 내세울 수 있는 간판스타. 섬유질은 소화효소에 분해되지 않는 식물세포의 잔여물로 대장까지 내려가 장을 자극하기 때문에 변비 예방에 도움을 준다.
대장암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식물성 식품의 섭취량이 많을수록 또한 동물성 식품의 섭취량이 적을수록 대장암의 발생 빈도가 낮아진다는 통계가 나와 있기도 하다. 그 원인은 아마도 음식물의 장내 통과속도가 빨라짐으로써 발암물질과 대장과의 접촉시간을 줄여주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섬유질은 다이어트에도 좋다.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을 주지만 열량은 낮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 음식물이 장을 통과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영양소 흡수량을 적게 한다는 것 또한 다이어트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는 다이어트와 상관없는 경우에는 오히려 단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 특히 칼슘, 철분 등 각종 무기질의 흡수 및 이용률을 저하시킨다는 것은 섬유질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마지막으로 섬유질은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떨어트려 동맥경화 등의 성인병을 예방 치료하고 혈당치의 과도한 상승을 막아주기 때문에 당뇨병에도 도움을 준다.
풀만 뜯고는 못 살아 앞서 말했다시피 단백질과 무기질은 동물성 식품에 든 것이 식물성 식품에 든 것보다 흡수율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치게 식물성 식품만을 섭취할 경우에는 영양결핍을 낳을 수 있으므로 주의할 것. 단백질의 경우에는 식물성 식품만 먹더라도 골고루만 섭취하면, 특히 콩을 많이 먹으면 그다지 심각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일부 무기질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철분이 가장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빈혈에 걸리기 쉽다는 것이 바로 그것. 시금치, 깻잎 등에 철분이 많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흡수율이 절대적으로 낮아서 절대량을 먹지 않는 한 동물성 식품을 먹었을 때만큼의 효과를 거둘 수 없다. 그 다음으로 문제되는 것은 비타민 B12. 내장(內臟)이나 굴, 조개 등에는 많이 들어 있지만 식물성 식품에는 전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자칫하다가는 악성빈혈, 신경기능 장애 등의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이밖에도 칼슘, 아연, 비타민 등의 무기질이 결핍될 수 있으므로 결국은 육식과 채식이 적절하게 조화된 식탁이 건강을 부른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그렇다면 스님이나 완전채식주의자처럼 남의 살은 입에도 안 대는 경우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들 중에 빈혈 환자나 신경장애 환자들이 많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왜일까? 분당 차병원 이은 영양팀장은 이렇게 말한다.
"채식에 대한 완벽한 노하우만 쌓여 있다면 별다른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스님들이 일반인보다 오히려 더 혈색 좋고 광채 나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지요. 지나치게 채식으로만 짜여진 식단이 정작 문제가 되는 때는 성장기의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적당량의 동물성 식품을 섭취하지 않았을 경우나 노하우가 쌓여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완전채식을 시도할 때입니다. 그 경우엔 성장부진이나 빈혈 같은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지는 것이지요."
너무 기름져도 말썽 하지만 지나치게 기름진 식단을 선호하는 것 역시 문제점 투성이기는 마찬가지다. 동물성 식품은 양질의 영양소를 지니고 있는 반면 포화지방이 많고 섬유소가 적어서 죽으라고 그것만 먹다가는 비만해지거나 질병에 걸리기 십상인 것.
식단이 날로 서구화되어 가면서 우리 주변에는 뚱뚱한 사람들이 발에 채일 만큼 많아졌다. 아이들은 햄버거나 피자 따위의 패스트푸드에 사족을 못 쓰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고기 굽느라고 정신이 없다. 물론 비만이 순전히 고지방식 식사 때문에 생긴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말이다. 고지방식이는 고지혈증, 동맥경화, 심장혈관질환, 뇌혈관질환, 대장암, 유방암 등의 발병률을 높이는 데에도 지대한 영양을 미친다는 사실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섬유질 부족으로 인해 음식 찌꺼기가 장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져서 변비에 걸리거나 노폐물이 체내에 쌓여 피부가 나빠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배고파서 서럽던 시절의 풀내음 가득한 식단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거듭 강조하지만 식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골고루 먹는 것이지 "뭐가 해롭다더라" 혹은 "뭐가 좋다더라"는 말만 들리면 벌떼처럼 이리로 몰려갔다가 저리로 몰려갔다가 난리법석을 피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물성 식품 역시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만 피하면 될 뿐이지 구태여 정육점이나 어물전 앞을 피해다니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일주에 몇 번 고기를 먹을까요?"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다는 것은 유치원에 들어가지도 않은 어린아이조차 밥상머리에서 귀가 따갑도록 듣는 말이다. 그런데 그 '골고루'란 말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먹으라는 소리일까? 지금부터 궁금증을 풀어보자.
사람들은 '난 적어도 일주일에 고기 한 번은 먹으니까…', '과일은 이틀에 한 번 정도 먹는 게 좋겠지?'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양분이란 일주에 한 번 왕창 먹는다고 해서 저금통에 넣은 동전처럼 차곡차곡 저장되는 것은 아니다. 매 순간, 혹은 매일 우리의 몸은 일정 정도의 영양분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만큼의 영양분이란 도대체 얼마 만큼일까?
영양사들이야 '음식 몇 그램에 칼로리가 얼마이고 그 음식 속에 든 영양분은 지방 단백질 탄수화물 순으로 많다'는 식으로 알아두어야겠지만, 일반인들이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다. 알려고 기를 써봐야 머리만 아플 뿐이라는 것도 문제이려니와…. 그렇다면 어림짐작으로 골고루 먹는 것보다는 조금 더 나은 방법을 강구해 보는 것이 좋을 터. 지금부터 그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식사구성안이 뭘까? 식사구성안은 우리가 먹는 음식을 몇 개의 군(群)으로 나누고, 음식의 양을 '1단위'라는 표준량으로 산출해 놓은 것이다. 쉽게 생각하면 모든 영양분을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원리는 같지만 어디서 만든 것이냐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다음에 소개하는 것은 영동 세브란스병원 영양과에서 사용하는 식사구성안인데 원리만 안다면 각 가정에서도 적용해볼 수 있다.
<표>식사구성안 : 식품군에 따른 1단위의 양
식사구성안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나? 하지만 식사구성안이 있다고 해서 완벽한 밥상을 차리기 위한 준비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성별, 키, 몸무게, 활동량 등에 따라서 음식의 양을 달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경우별로 일일이 권장량을 산출하는 방식은 몹시 까다로운 일이므로 여기서는 175cm, 60∼74kg의 남성을 예로 들어 식단을 차려보자.
하루동안에 175cm, 60∼74kg의 남성에게 필요한 음식의 양은 곡류군 12단위, 어육류군 6단위(고지방 3단위, 중지방 3단위), 야채군 9단위, 지방군 5단위, 우유군 2단위, 과일군 2단위이다. 하루동안 필요한 이 양을 아침, 점심, 저녁별로 정확히 3등분해서 차리되 아침은 점심, 저녁보다 덜 기름지게 차리고, 밥을 먹을 경우는 우유나 과일을 간식으로 먹는다. 자 그럼 이제부터 위의 식사구성안을 구체적으로 보면서 계산해보자.
예를 들어 곡류군을 하루에 12단위 먹으라는 것은 1끼에 4단위 먹으라는 것이므로 밥을 차릴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계산이 나온다. "1/3공기(1단위)×4=4/3공기." 참고로 밥 4/3공기란 보통의 그릇에 약간 눌러 담은 정도의 양이다. 그렇다면 밥 대신 빵이나 감자를 먹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도 똑같다. 식사구성안에 따르면 밥 1/3공기와 식빵 1쪽, 감자 1개가 같으므로, 빵을 먹을 경우는 "식빵 1쪽(1단위)×4=식빵 4쪽", 감자를 먹을 경우는 "감자 1개(1단위)×4=감자 4개"를 먹으면 되는 것이다.
<표>채식, 육식이 조화로운 모범적인 밥상(175cm, 60∼74kg의 남성의 경우)
여전히 남아 있는 의문 위의 식단표는 하나의 예일 뿐이며 단위수만 맞춘다면 언제든지 응용이 가능하다. 어느날 아침에 꽃게찌개를 먹었으면 그 다음날은 식사구성안에서 꽃게 반마리와 동일하다고 나와 있는 가자미구이 한토막을 먹거나, 쇠고기 살코기볶음 40g을 먹으면 된다. 한가지 더 알아두어야 할 것은 자신이 175cm, 60∼74kg의 남성에 딱 들어맞지 않는다고 해서 위의 식단표에서 아무것도 건질 게 없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특별한 경우, 즉 아주 비만하거나 왜소한 경우가 아니라면, 즉 보통 체구의 남자라면 위의 식단표 대로 먹는 것이 대체로 적합한 편이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여성이라고 생각되는 160cm, 48∼59kg의 여성은 곡류군 9단위, 어육류군 4단위(고지방 2단위, 중지방 2단위), 야채군 9단위, 지방군 4단위, 우유군 1단위, 과일군 2단위를 먹는 것이 좋다. 이러한 여성의 경우 위의 식단표 대로 차리되 음식의 양만 조절하면 된다. 예를 들어 한끼에 4단위의 곡류군을 섭취해야 하는 남성이 약간 눌러담은 밥 1공기를 먹어야 하는 것과는 달리 살짝 담은 밥 1공기를 먹는 식으로 식단을 짜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주부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식사 준비를 한다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닌 까닭. 지금도 허리가 휘어질 지경인데 식구 별로 누가 얼마만큼 먹는지, 무슨 반찬을 집어먹는지 일일이 체크한다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병원 식당처럼 각자의 식판에 먹어야 할 양 만큼만 담아준 다음, "남기지 마. 더 달라지도 마."라고 엄포를 놓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며….
그러므로 보다 현실적인 방법은 위의 식단표를 흉내라도 내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육식과 채식의 균형을 맞춘다고 휘황하게 알고 있는 것보다는 모범적인 상차림이 어떤 것인지 알고나 보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터. 위의 식단표만큼은 아닐지라도 어육류군에서 반찬 1∼2가지, 야채군에서 3∼4가지씩만 준비한다면 그것보다 더 잘 차려진 식탁은 웬만해서는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성장기에는 육식, 노년기에는 채식? 사람들 중에는 한창 자랄 나이에는 동물성 식품 위주로, 중·노년기에는 식물성 식품 위주로 먹는 것이 좋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그 말은 맞는 것일까? 영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므로 주의할 것. 성장기에 고단백의 식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단백 식사랍시고 마구 육류만 먹다 보면 자칫 비만 체질이 되기 쉬운 것이다. 단백질이나 칼슘 등을 많이 섭취하되 지방 섭취량이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도록 골고루 먹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더욱 문제되는 것은 중·노년기에는 성인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육류 따위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좋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육류에 대해서 '육류=지방덩어리'라고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육류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영양분은 지방이 아니라 단백질이다. 물론 육류 속에 지방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기름을 발라내고 살코기만 적당히 먹는다면 오히려 노화로 인해 기력이 떨어진 노인들에게 약이 될 수 있다. 물론 너무 많이 먹을 경우에는 다른 음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지만 말이다. 결론은 이것이다. 성장기든 노년기든 골고루 먹는 것이 다른 어떤 원칙보다 중요하다!
성인병에 걸린 사람은 고기 냄새도 맡지 마라(?) 성인병, 특히 동맥경화증 환자가 있는 집에는 고기 굽는 냄새가 절대로 새나오지 않는다. 설혹 냄새가 난다 해도 환자가 집을 비운 사이에 남은 식구끼리 몰래 먹는 것이거나 환자의 인내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한 경우. 정말 성인병이 있는 사람은 육류를 입에 대지도 말아야 하는 걸까?
아니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육류는 지방덩어리가 아니라 단백질덩어리다. 기름기를 떼어내고 살코기만 적당히 먹으면 질병을 악화시키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한가지 더 알아두어야 할 것은 기름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이 아니라 불포화지방은 오히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너무 많이 먹을 경우 문제되기는 마찬가지이므로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은 곤란하다. 불포화지방은 콩류, 견과류, 해조류, 올리브유, 참기름, 등푸른생선 등에 많이 들어 있다.
채식주의자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 주위에는 육류는 물론 생선이며 계란조차 입에 대지 않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그들이 바로 채식주의자라 불리는 사람들…. 그들은 무슨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을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양재 전철역 부근 'SM채식뷔페'에서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재혁 씨(37세)를 만나 그가 선택한 길 위에는 무엇이 놓여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어느 채식주의자와의 만남
▷ 완전채식을 실천하고 계신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6년 전에 '관음법문'에 입문하면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관음법문'은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단체입니다.
▷ 육식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불교의 계율 중에 불살생(不殺生)이라는 것이 있는데, 저희 관음법문 사람들도 그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설혹 내가 직접 생명을 빼앗지는 않았다고 해도 고기를 먹는 것은 제 손으로 살생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동물들이 고통스럽게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은 고기를 먹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 까닭이지요.
▷ 다른 이유는 없습니까?
채식을 하는 것은 무한히 확장된 사랑의 표현입니다. 스스로 죽여달라고 말한 적이 없는 동물을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죽여서 먹는 것이 육식입니다. 채식을 하는 것은 말 못하는 동물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채식은 자연에 대한, 그리고 인류에 대한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동물을 사육하기 위해서 불태워지는 열대우림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100g 남짓한 햄버거 고기 하나를 얻기 위해 55평방피트(약 18㎡)의 열대우림이 파괴된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로 목축이 환경파괴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목축이 수질을 오염시킨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 없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구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채식은 기아에 굶주리고 있는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는 기아와 영양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10억이나 됩니다. 그 중에서 4,000만이 넘는 사람들이 해마다 굶어 죽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한 양식들이 동물을 기르는 데 낭비되고 있습니다. 곡물수확량의 1/3 이상이 가축의 사료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지요. 만일 그 땅에 인류가 먹을 양식을 심는다면 기아 문제는 완전히 해결될 것입니다.
▷ 완전채식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없을까요?
일반인들은 채식만 해서 어떻게 건강을 지킬 수 있겠느냐고 고개를 내젓지만 육식은 몸에 젖은 습관일 뿐이지 인류가 처음부터 육식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채식동물의 장이 길다는 건 알고 계시겠지요? 인간의 장도 채식동물의 장 만큼 깁니다. 그것 말고도 인간의 신체가 채식에 더 적합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자료는 많습니다. 일반인들은 동물성 단백질이나 인, 철분 등을 얻을 수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콩에 든 단백질, 토란이나 감자에 들어 있는 인, 시금치나 갯잎 등에 든 철분으로도 충분히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 그래도 적당히 육식을 하는 것이 몸에 더 이롭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육류는 안전한 음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동물을 사육할 때는 성장호르몬이나, 항생제를 먹이거나 주사합니다. 그 성분이 인체에 들어왔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자명합니다. 또 동물을 먹이는 사료는 어떻습니까? 사료를 재배할 때 뿌리는 DDT 같은 맹독성 농약은 동물의 몸에 쌓여 있다가 육식을 하는 사람의 몸속으로 고스란히 들어옵니다. 과일이나 채소에 묻은 농약은 물로 씻어낼 수 있지만 고기 속에 축적된 농약은 씻어낼 수조차 없습니다.
▷ 완전채식을 하는 것이 몸에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특별한 동기가 없는 한 하루 아침에 시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권하실 만한 방법이 있다면요?
채식요리에 차츰차츰 익숙해져야겠지요. 아무리 건강에 좋다고 하더라도 맛이 없으면 안 먹게 되는 게 사실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채식요리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상당한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간혹 채소 다듬기 귀찮지 않느냐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신데 어쩌면 요리 중에서 채식요리가 가장 쉬울 수도 있습니다. 물에 깨끗이 씻기만 하면 간단한 조리만으로도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까요.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건 콩단백이나 밀로 만든 고기로도 충분히 고기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겁니다. 조리법만 제대로 안다면 육식요리와 거의 다르지 않은 맛을 낼 수 있지요. 콩단백이나 채식햄 같은 것은 시중에서 구할 수 있고 저희 가게에서도 팔고 있습니다. 사실 저희 가게에 오시는 손님들도 거의 다 일반인들입니다. 대부분이 건강 생각해서 오시는 분들인데 이렇게 채식식당을 이용해 보는 것도 채식요리에 대한 선입견을 버릴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겠지요.
▷ 고기맛을 못 잊어져서든지 채식이 못 미더워서든지 육식을 중단할 생각이 전혀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방법을 권하고 싶으신가요?
한달에 한 번, 혹은 일주에 한 번만이라도 완전채식을 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몸 속에 축적되어 있는 독이 빠져나간다는 걸 확실하게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다가 조금씩 조금씩 채식량을 늘여나가는 것이 결국 건강에 다가가는 지름길이겠지요. 정 육식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육식 횟수를 줄여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한달에 열번 드신다면 다음달엔 여덟 번, 그 다음달엔 다섯 번하는 식으로요.
▷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미리 부탁드렸던 식단표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단백질 보충을 위해 콩을 많이 먹어야 하구요. 토란과 양배추에는 칼슘이 가득 들어 있고 풋고추에는 비타민이 많습니다. 그 외의 채소나 과일에도 각종 미량원소들이 다양하게 들어 있으니까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잘 챙겨 드시라고 일단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점심 때는 활동량이 많으니까 아침이나 저녁보다 조금 더 풍성하게 드시고 간식은 3끼를 잘 챙겨드신다면 굳이 챙겨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영양사들이 분석한 김재혁 씨의 식단
김재혁 씨의 추천식단에 대한 영양사들의 견해는 역시 동물성단백질, 철분 문제로 요약된다. 완전채식 식단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멋질 수 있지만, 아무래도 동물성 식품에서 공급받을 수 있는 영양분이 문제되지 않겠느냐는 것.
일단 단백질 문제는 식물성 단백질이 흡수율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식단에 나오는 만큼 콩을 많이 섭취한다면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영양사들은 말한다. 그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철분 문제. 깻잎 등으로부터 식물성 철분을 얻을 수 있지만 이것 역시 흡수율이 낮기 때문에 빈혈 같은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스님들이 빈혈에 많이 걸린다는 통계가 없는 걸로 봐서는 채식도 잘만 한다면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견해를 피력하기도…. 하지만 한창 자랄 시점에 있는 어린이나 청소년, 임신부들에게 완전채식 식단을 권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무턱대고 야채즙이나 과일만 먹는 것은 위험하다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완전채식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다
분명한 것은 아직까지는 완전채식보다 육식과 채식을 겸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입장이 월등하게 많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김재혁 씨가 지적한 육식의 문제점들도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바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을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 파괴되어 가고 있는 생태계를 뻔히 바라보면서도 나 몰라라 하지는 않았는지…. 결론은 이것이다. 완전채식을 하는 것이 좋다고 선뜻 말하기에는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 너무 많다는 것.
도움말 : 김재혁 SM채식뷔페 주방장, 조애경 서울 가정의원 원장, 이은 분당 차병원 영양팀장, 이지선 영동세브란스병원 영양사
건강다이어리
채식과 육식 그 환상 의 랑데뷰.
예림푸드
2010-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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